[작품] 문학 낭독회: 팔레스타인을 읽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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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2026년 8월 29일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주최한 ‘문학 낭독회 ㅡ 팔레스타인을 읽고, 쓰다’에 함께 한 한국과 팔레스타인 문인들, 그리고 그들의 낭독 작품과 몇 가지 참고 자료를 소개합니다. 

참여 작가

김남일 소설가 l 사회자

제1회 전태일 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로, 베트남과 팔레스타인을 잇는 비서구 세계문학 운동을 끌어왔습니다. 2000년대부터 국내에 갓산 카나파니 등 팔레스타인 문학을 꾸준히 소개해 온 선구적 인물입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및 계간지 《아시아》, ALAA 포럼을 주도했습니다. 현재 문인들의 팔레스타인 산/책 모임 ‘기록과 기억’을 운영하며 연대의 길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선향 시인

200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후, 이주여성과 노동자 등 현실의 여성적·사회적 고통을 정면으로 다뤄온 시인입니다. 외국인 유학생과 이주민을 가르치며 그들의 정서적·법적 보호자 역할을 몸소 실천해 왔습니다. “끝내 길들여지지 않아 결국에는 수레를 뒤집고야 만다”는 말처럼 타협하지 않는 자유와 저항 의식으로, 아름답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들에게 끌리는 시를 씁니다. 팔레스타인 연대 시를 발표하는 등 약자들의 비극과 참상을 애도하고 기록합니다.

부희령 소설가

소설 집필과 해외 유수 작품들의 번역을 병행하며 80여 권의 책을 세상에 선보인 작가입니다.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한 존재들을 향한 다정한 시선과 생의 존엄을 찾아내는 맑은 문장을 보여줍니다. 팔레스타인 소설가 아다니아 쉬블리의 내한 대담자로 참여하는 등 국경을 넘어 지속적으로 교류해 왔습니다. 전쟁과 피난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할 작고 무고한 생명들의 존엄을 깊이 포착합니다.

박철 시인

1987년 등단 이후, 척박한 현실과 가난한 소시민의 삶을 온기와 희망의 언어로 노래해 온 시인입니다. 오직 시 작품으로만 세상과 대화한다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이육사시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분단국가의 현실과 민중의 연대 의식을 치열하게 천착해 왔습니다. 삶의 그늘과 소외된 이들에 대한 배려를 통해 세계의 비애를 낙관과 생명력으로 극복해 냅니다.

이경란 소설가

2018년 등단 이후, 소외된 계층의 생존과 따뜻한 돌봄의 연대를 치밀하게 포착해 온 작가입니다. 감각적인 문장과 세심한 고증으로 가난, 청년 실업 등의 현실을 직시합니다.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을 조명하며 가자지구의 비극이 남의 일이 아님을 강력히 피력했습니다. “문인이라면 당연히 소외된 소수자를 주목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타인의 고통에 깊이 응답합니다.

이사 카라카

팔레스타인 전 수감자 담당 장관이자 국립도서관장 출신의 대표적인 ‘옥중 문학’ 기록자이자 비평가입니다. 12년간 10차례 이상 구금된 경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의 고문과 점령 실태를 있는 그대로 증언합니다. 난민과 수감자를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민족 투쟁과 정체성을 이끄는 주체’로 재조명합니다. 가자지구 참상 속에서도 “글을 쓰는 자는 패배하지 않는다”라며 문학적 연대와 저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흘람 브샤라트

팔레스타인 작가∙시인입니다. 청소년 소설 및 어린이 그림책 분야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아랍권 작가입니다. 최근 출간한 『들판의 이야기』는 팔레스타인 자연에서 자라는 풀을 다룬 연작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점령 세력이 풀이 자라는 땅뿐 아니라 풀까지 훔치려 하는 현실을 현실을 다룹니다. 

낭독 작품

작품 이름: 돌 던지는 소년들  l  작가 이름: 김선향  l  낭독: 김선향 시인

돌 던지는 소년들

김선향

오후 3시였어요

우리는 돌을 던지고 있었죠

무장한 군인들이 느닷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어요

등에 한 발

배에 한 발

쓰러진 제 다리를 끌고

어디론가 가는 동안 그들은

네 엄마는 창녀야, 이 개새끼야!

(참, 제 이름은 리파트예요, 열일곱 살)

뱃속 내장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눈을 떠보니 가자 시의 알 시파 병원

마침 지나가던 UN 소속 앰뷸런스가 절 구했나봐요

다리를 절뚝거리죠

친구들이 놀리냐고요?

천만에요, 저를 존경한대요

제 여자친구는 양쪽 눈에 총상을 입었는걸요, 뭐

가끔 절망에 빠져 울다가도

머릴 세차게 흔들며 웃어요

저는 정말 영웅이 되었을까요?

작품 이름: 나의 문학과 팔레스타인  l  작가 이름: 부희령  l  낭독: 부희령 소설가

나의 문학과 팔레스타인

부희령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 작가 토니 모리슨은 말합니다. 작가는 책을 쓰려고 나무, 나비, 인간과 같은 살아 있는 존재로부터 뭔가를 훔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요. 그것은 달콤한 꿈속에서 인간을 유혹해 생명의 정수를 빼앗는 써큐버스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합니다. 누구나 자기 삶에 대한 소유권과 특허권이 있기에 그것은 저작권 침해와 마찬가지라고요. 제가 늘 고민하던 지점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작가들은 자기가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님에도 역사에서 드러난 고통의 현장, 학살의 사건을 작품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걸작이라고 일컫는 작품 중에는 특히 그런 것들이 많고요. 저는 자문해 보곤 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이가 겪은 고통과 억울함과 부조리함을 다루는 것은 괜찮은 일일까? 토니 모리슨의 지적처럼 소중한 무언가를 훔치는 짓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작가란 하이에나 같은 존재는 아닐까? 피가 흥건한 살육의 현장에 반드시 나타나는 존재. 정화와 기록을 핑계로 남은 것들을 말끔히 먹어 치우는 존재. 이런 의심이 저를 타인의 고통 앞에서 늘 머뭇거리게 했습니다.

이런 의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것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봉쇄로 인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아이들, 이스라엘 군의 고의적 조준 사격과 폭발물로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사진은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평범한 인간이자 한 아이를 키운 어머니이기도 한 저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서글픈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유엔 독립 국제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약 2년간 최소 2만 179명의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부와 군은 감히 어떻게 이런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가자에서 자행된 제노사이드는 알고도 허용하는 자, 모르는 척 눈 감는 자, 아예 모르고 있던 자, 모두가 공범일 수밖에 없는 인류 모두의 범죄라고. 언젠가 인류는 이 범죄의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저는 새삼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얽혀 있는 역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제국주의,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에서 비롯된 이스라엘의 건국에 대해, 1948년 5월 15일의 알 나크바에 대해, 네 번의 중동전쟁에 대해, 두 번의 인티파다에 대해, 다섯 차례의 가자 전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결과이지만 명백한 국제법 위반인 이스라엘의 정착촌과  결국 공허한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 1993년과 1995년의 오슬로 협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정착촌과 유대인 전용 우회 도로 건설은 팔레스타인 영토를 분열시키고, 경작지, 물 같은 팔레스타인 농촌에 필요한 자원을 전용하여 경제 발전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여 간접적 제노사이드를 시도하는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자의 비극은 제가 참여한 독서 모임에서 팔레스타인 작가와 시인의 작품을 함께 읽도록 했습니다. 마흐무드 다르위쉬의 시와 가산 카나파니의 소설,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집과 무리드 바르구티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어느 날 저는 우연히 서제인 번역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알라 알카이시의 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가자의 아이들 사진만큼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그의 글을 죄다 읽었습니다. <굶주림의 울부짖음 아래> 라는 글의 한 구절을 인용하겠습니다.

“마침내 세상이 페이지를 넘길 때면, 정말로 그런 날이 온다면, 세상은 가자가 침묵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입 속에 흙이 가득 들어찬 채로도 말을 했다. 깨진 잇새로도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부러진 무릎으로도 기도했다. 그리고 세상이 외면했을 수는 있겠지만, 이것만큼은 기억되게 하자. 우리는 이 굶주림에 이름을 붙였다. 이것을 참아 내고 견뎌 냈다. 그것만큼은 남아 있게 하자.”

이러한 외침 앞에서 나의 허약한 의심은 다시 무너졌습니다. 문학이란 무엇입니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세상에 존재했던 폭력과 고통과 부조리함과 그것에 대한 저항에 눈 감지 않고 귀 막지 않으려는 노력이 비명으로 터져 나오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일 것입니다. 나팔을 불고, 꽹과리를 두드리고, 북을 치고, 숟가락으로 냄비를 두드려서라도 시끄럽게 하여 세상을 깨우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일 것입니다. ‘그것만큼은 기억되게 하고, 그것만큼은 남아 있게’ 하는 게 글 쓰는 사람의 책임일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아이들과 작가와 시인이 저에게 그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작품 이름: 어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l  작가 이름: 박철  l  낭독: 박철 시인

어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박철

전쟁이 없는 세상은 없었다

전쟁을 끓기 위해 생명을 끊는 일이 멈춰진 시간은 없다

평화를 위해 평화를 죽이는 말이 사라진 적도 없었다

그러니 친구여

오늘은 어머니의 눈빛만 생각해 보자

어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살점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이 어디서 왜 오는지

우리는 왜 이렇게 죽어야만 하는지 몰랐다

문제는 그 이후다

나를 보거라 아들아 돌이 되었지 않니

돌이 되어 내가 너를 낳았지 않니

내가 겪은 모든 살육과 놀라움과 두려움을 안고 너를 낳았으니

너는 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주장과

피의 강물에 잠기어야 하니

내 기억에 의하면

죽임은 죽임이라서

한번 죽으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

한번 일어난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단다

살아있는 한 나의 전쟁도 끝나지 않을 거야

안녕이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기도 전에

아무도 모르게 증발해 버리는

어리석은 동물이 이 세상에

우주 어디에 또 있겠니

나는 그렇게 바보가 되었단다

내 기억에 의하면 우리는

바보가 바보를 낳고 바보가 바보를 낳는 주술에 걸렸어

그러나 또한 어머니의 기억에 의하면

깨지지 않는 주술은 어디에도 없었다

언젠가는 이 악몽도 깨어날 거야

그때 비로소 아이는 아이가 되고

엄마는 엄마가 되고

마당가 숨죽이던 아이리스

검게 그을린 때죽나무도 살아날 거야

그러니 제발 그때까지

친구여 팔레스타인이여 안녕하기를

작품 이름: 사소하지 않은 일  l  작가 이름: 이경란  l  낭독: 이경란 소설가 

사소하지 않은 일

이경란

여기 위태로운 길을 가는 한 여성이 있다.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이고 라말라에 거주한다. 목적지는 텔아비브와 북서 네게브. 그곳에 박물관과 기록보관소가 있다. 차로 한두 시간 걸릴 그곳까지 가는 여정은 그러나 간단치 않다. 그가 확인하고 싶어 하는 어떤 일의 진실에 도달하는 여정이다.

제한구역에 거주하는 그는 동료로부터 신용카드와 신분증을 빌리고 차를 몰아 출발한다. 어떤 일이란 그가 태어난 날로부터 정확하게 25년 전 한 소녀가 이스라엘 병사들로부터 집단 강간과 살해를 당한 후 사막에 매장된 사건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알나크바(대재앙)’이라 부르며 애도하고 이스라엘에서는 독립전쟁이라 부르며 경축하는 그 전쟁 1년 후인 1949년의 일. 팔레스타인 갈릴리 태생 작가이자 문화연구자인 아다니아 쉬블리의 소설 『사소한 일』(전승희 역, 강)의 내용이다. 

소설의 1부에서는 소녀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가해자인 소대장은 규율과 청결을 엄격하게 지켜나가는 인물로 그를 중심으로 한 디테일한 진술들은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그에게 공감하게 만든다. 그러나 희생자인 소녀를 휘발유로 소독하면서까지 위생에 집착하던 그는 단숨에 무자비한 가해자로 바뀌고 독자는 당황하게 된다. 그가 유지해나가던 ‘사소한 일’들 후에 벌어지는 엄청난 폭력과 비극에 무방비로 당하는 것이다. 2부에서는 ‘나’의 위험한 여정을 시종일관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가게 되는데, ‘나’가 날이 바뀌어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병사의 총에 희생당하는 결말을 봐야 한다.

작가는 2023년 10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리베라투르상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가자지구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면서, 도서전 측에서는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표명, 시상식을 연기했다. 작품은 독일의 평론가에 의해 반유대주의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감옥이라고 일컬어지던 가자지구는 이제 더는 감옥에 그치지 않는다. 자유만 속박당한 곳이 아니라 ‘죽음’과 ‘아직 안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 되었으니.

작가는 염소도 동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물며 인간이 그것을 모른다는 것인가 반문하면서.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다. 즉각적으로 알 수 없다 하더라도 언젠가 후세대가 알게 된다. 그리고 같은 일은 다시 발생한다. 낯설지 않다. 유구하게 반복되는 역사가 차곡차곡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이 아니다.

재한 팔레스타인인들의 낭독 작품

「예루살렘에서」, 타밈 알바르구티 [낭독: 가자 출신 팔레스타인인]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이의 집을 지나갔으나,
우리를 내친 것은 적들의 법과 적들의 장벽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쩌면 이것이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그렇다면 네가 예루살렘에 간들 무엇을 보게 될 것인가?
너는 네가 견딜 수 없는 모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길 한편에서 그 도시의 집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말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난다고 모두가 기뻐하는 것은 아니며,
사랑하는 이가 없다고 해서 모두가 상처받는 것도 아니다.

이별 전의 만남이 기쁨을 주었다 한들,
그 기쁨이 온전히 지켜지리란 보장은 없으니.

네가 옛 예루살렘을 단 한 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눈길 닿는 곳마다 그곳이 보일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아내에게 싫증 나 휴가를 갈지 집을 새로 칠할지 고민하는
조지아 출신의 채소 장수가 있다.

예루살렘에는,
토라가 있고, 폴란드에서 온 젊은이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어퍼 맨해튼 출신의 노인이 있다.

예루살렘에는,
시장의 길을 막아선 에티오피아 출신의 경찰이 있다.

스무 살도 안 된 정착민의 어깨엔 기관총이 매달려 있고,
모자 하나가 통곡의 벽을 향해 경의를 표한다.

금발의 서양 관광객들은 정작 예루살렘은 전혀 보지 않은 채,
하루 종일 광장에서 무를 파는 여인과 함께
서로의 사진을 찍고 있다.

예루살렘에는,
군인들이 구름 위를 짓밟듯 걸어 다닌다.

예루살렘에서,
우리는 아스팔트 위에서 기도했다…

예루살렘에는 너 말고 누가 있단 말인가!

「순교자」, 압둘라힘 마흐무드 [낭독: 가자 출신 팔레스타인인]

순교자

나는 내 손바닥 위에 내 목숨을 올려놓고

그것을 죽음의 심연으로 던지리라.

벗을 기쁘게 하는 삶이거나

적을 분노케 하는 죽음이리라.

고결한 이의 영혼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죽음을 맞이하거나 소망을 이루는 것이다.


삶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 영역을 두려워하고 범접할 수 없게 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살지 않으리라.

내가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귀 기울이고

내 말은 사람들 사이에 울려 퍼지리라.

맹세컨대 나는 나의 죽음을 알고 있지만

나는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빼앗긴 나의 권리를 지키다 맞이하는 죽음,

조국을 지키다 죽는 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바다.

내 심장으로 적들의 낯을 내리치리라

내 심장은 쇠요, 내 불꽃은 화염이라.

검의 날로 내 터전을 지키리니

그제야 내 동포들은 내가 진정한 사내임을 알게 되리라.

「이 땅에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마흐무드 다르위시 [낭독: 가자 출신 팔레스타인인]

이 땅에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이 땅에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4월의 머뭇거림, 새벽의 빵 냄새,

남자들에 대한 한 여자의 생각,

돌 위의 풀,

피리의 한 가닥 선율 위에 서 있는 어머니들,

그리고 기억을 향한 침략자들의 두려움.

이 땅에는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다:

4월의 끝자락, 대지의 여인이여,

모든 시작의 어머니, 모든 끝의 어머니…

본래 팔레스타인이라 불렸고, 마침내 팔레스타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나의 여인이여: 나는 자격이 있다, 네가 나의 여인이기에, 나는 살아갈 자격이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l  갓산 카나파니 [낭독: 문타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어둠이 내리자 아부 알 카이주란은 대형 트럭을 몰고 잠든 도시 외곽을 향해 나아갔다. 희미한 불빛들이 길을 따라 흔들렸고,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기둥들도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곧 끝날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윽고 깊은 어둠이 온 세상을 덮을 터였다. 오늘밤은 달조차 뜨지 않아 사막의 끝자락은 죽음처럼 적막했다.

그는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사막 안쪽으로 난 모랫길로 천천히 들어섰다. 대낮에 이미 세 사람을 세 개의 무덤에 한 사람씩 묻기로 마음을 정한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양 팔에 마취제라도 맞은 듯 극심한 피로가 온몸을 갉아먹고 있었다. 도무지 일할 기력이 없었다. 세 개의 무덤을 파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삽을 들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알 하지 리다의 차고에서 차를 빼기 전만 해도, 그는 그들을 묻지 않고 세 시신을 사막에 던져둔 채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혼잣말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방법도 내키지 않았다. 동료들의 시신이 사막에서 부패해 맹수와 짐승의 밥이 되는 것, 그리고 며칠 뒤 모래 위에 하얀 뼈대만 남아 나뒹구는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었다.

트럭은 모랫길 위를 힘없는 소리를 내며 기어갔고, 그의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엄밀히 말해 깊은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단절된 장면의 파편들이 멈춤도, 연관도, 설명도 없이 그의 이마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마치 개미 떼가 줄지어 지나가듯 쓰라린 피로가 그의 뼈마디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그의 코끝으로 악취를 실어 왔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시청에서 쓰레기를 쌓아두는 곳이 여기로군.’ 이내 다른 생각이 스쳤다. ‘시신을 여기 던져두면 아침에 발견되어 정부의 주도로 매장되겠지.’ 그는 운전대를 돌려 누군가 모래 위에 파놓은 수많은 바퀴 자국을 따라갔다. 대형 헤드라이트 두 개를 끄고, 작고 희미한 차폭등 불빛에 의존해 천천히 차를 몰았다. 앞에 커다란 검은 쓰레기 더미들이 솟아오른 것이 보이자 작은 불빛마저 꺼버렸다. 사방의 공기가 악취로 가득 찼지만, 그는 금세 익숙해졌다. 이윽고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내렸다.

아부 알 카이주란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트럭 옆에 잠시 서 있다가 물탱크 위로 올라갔다. 물탱크는 차갑고 축축했다. 모서리가 진 잠금장치를 천천히 돌린 뒤 철제 뚜껑을 위로 잡아당기자, 거칠고 덜컹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가볍게 안으로 슬라이딩해 들어갔다. 첫 번째 시신은 차갑고 뻣뻣했다. 시신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해치 구멍으로 머리부터 빼낸 뒤, 두 다리를 들어 올려 위로 던져 버렸다. 탱크 테두리를 따라 둔탁하게 구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 모래 위에 쿵 하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두 번째 시신은 철제 가로대에 매달린 손을 떼어내는 데 애를 먹었다. 겨우 발을 잡아당겨 구멍으로 끌어올린 뒤 어깨 너머로 던졌다. 뻣뻣하게 굳은 시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세 번째 시신은 앞의 두 시신보다 수월했다.

그는 밖으로 껑충 뛰어내려 해치를 천천히 닫고, 사다리를 타고 땅으로 내려왔다. 어둠은 짙고 빽빽하게 깔려 있었는데, 그 덕분에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는 도리어 안도감을 느꼈다. 시신들의 발을 잡아 한 채씩 끌고 가서 길목 어귀에 던져두었다. 이른 아침 청소차 운전사가 가장 먼저 볼 수 있도록, 보통 시청 청소차가 쓰레기를 버리려 서는 곳이었다.

운전석으로 올라간 그는 시동을 걸고, 바퀴 자국을 다른 흔적들과 최대한 섞기 위해 천천히 후진했다. 원래는 흔적을 완전히 감추기 위해 큰 도로까지 그대로 후진해 나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아가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시동을 다시 끄고 신발 날로 걸으며 시신들을 놓아둔 곳으로 돌아갔다. 시신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고, 마르완의 손목시계를 빼앗은 뒤 다시 트럭으로 돌아왔다.

트럭 문에 다다라 한쪽 다리를 위로 올렸을 때,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무언가를 하거나 말하려 한 채 그 자리에 굳어 서 있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이내 그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깨달았다. 다시 차에 오르려 했지만, 몸에 남아있는 힘이 없었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고, 온몸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머리로 솟구쳐 웅웅거리기 시작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움켜쥐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그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었다. 엄청난 굉음을 내며 결코 흔들리거나 사라지지 않는 커다란 생각이었다. 시신들을 던져둔 뒤편을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시선은 도리어 머릿속 생각에 불을 지펴 타오르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마침내 더 이상 머릿속에 그 생각을 눌러 담을 수 없게 되자, 이마에서 손을 내리고 눈을 크게 뜬 채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빠져나와 혀끝에서 굴러떨어졌다.

“왜 탱크 벽을 두드리지 않은 거지?”

그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으나 쓰러질 것 같아 운전석 계단을 올라가 운전대 위에 머리를 묻었다.

“왜 탱크 벽을 두드리지 않은 거야? 왜 아무 말도 안 한 거야? 왜…….”

그러자 갑자기 온 사막이 그 메아리를 울려 퍼뜨리기 시작했다.

“왜 탱크 벽을 두드리지 않은 거야? 왜 탱크 벽을 쾅쾅 치지 않은 거야? 왜? 왜? 왜?”

소설가 김남일 작가 추천 ㅡ 팔레스타인의 문학, 팔레스타인의 작가들

『팔레스타인의 눈물』

(The tears of Palestine is a Korean anthology of Palestinian writers’ works, with no separate English or Arabic edition of the anthology as a whole.)

고난의 땅, 삶의 최전선에서 지켜낸 인간의 존엄과 품위에 관한 문학적 기록

● 작가:

  • 수아드 아미리 Suad Amiry(1951~)
  • 아다니아 쉬블리 Adania Shibli (1974~)
  • 자카리아 무함마드 Zakaria Muhammad(1950~2023)
  • 무리드 바르구티 Mourid Barghouti(1944~2021)
  • 아이샤 오디 Aisha Odeh(1944~)
  • 자밀 힐랄 Jamil Hilal(1940~)
  • 하싼 하데르(1953~)
  • 주하이르 아부 샤이브 Zuhair Abu Shayeb(1958~)
  • 알리 제인 Ali Zein(1938~2011)
  • 유시프 알자말 Yousef Aljamal(1983~2023)
  • 나이루즈 카못 Nayrouz Qarmout(1984~)
  • 오마르 그라옙 Omar Ghraieb(1986~)

● 국내 출판: 자카리아 무함마드, 오수연 엮음, 도서출판 아시아, 2014

● 장르: 산문집

하루를 기약할 수 없는 그들이 꿋꿋하게 지켜온 정신과 문화, 어떤 경로로도 접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생생한 보고서.

팔레스타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 13인의 산문 15편을 수록했으며 팔레스타인의 고난과 희망을 전한다.

이 책은 2006년 국내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동명의 책에 최근의 상황을 담은 글 네 편을 추가한 개정증보판이다. 팔레스타인의 뛰어난 저술가 자카리아 무함마드와 한국작가회의 파견 작가로 팔레스타인을 취재한 소설가 오수연이 다시 엮은 이 책은 더 깊어진 팔레스타인의 상처와 더불어 더 절실해진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육성이 담겼다.

“이 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해 기획되었다. 멀고 먼 희망까지 거의 없는 길을 이 창작자들은 스스로 길을 냈으며, 꺼질 듯한 불꽃에 빛과 열기를 불어넣었다. 이토록 처절한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답고 격조 높게 쓸 수 있다니, 나 또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감탄해 마지않는다. 그러나 내게는 부당하게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우리나라에도 알려야겠다는 것보다 더욱 절박한 욕구가 있다. 한국인인 우리 입장에서 대륙 건너 팔레스타인을 시급히 알아야만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들 자신의 가물거리는 희망을 위한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사소한 일』

Minor Detail by Adania Shibli

전쟁과 폭력과 기억에 대한 성찰을 놓지 못하게 하는 소설

●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Adania Shibli (1974~)

● 국내 출판: 전승희 엮음, 한국문명교류연구소, 강 출판사, 2023

● 장르: 중편소설

“1949년 8월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자행된 ‘3일 참사’의 시간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냉철하게 그리고 있다. 망각을 일깨우는 작가의 예지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정수일 문명교류학자,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초대 소장

“비극적 사건은 비극이라기보다 어이없는 소극처럼 느껴지며,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다.”-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다니아 쉬블리의 장편소설 『사소한 일』은 칠십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자기 땅에서 폭력적으로 몰아낸 대재앙,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라는 이름으로 애도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은 독립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경축하는 바로 그 전쟁 일 년 후인 1949년 여름에 시작한다. 그해 여름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 소녀 하나를 생포해 강간한 뒤 살해해 사막에 매장한다. 그리고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망각 속에 묻힌 ‘사소한 일’에 대해 알게 된 한 라말라 거주 팔레스타인 여성이 그 사건에 사로잡힌다. 사건은 정확히 그녀가 태어난 날로부터 이십오 년 전 같은 날 일어났다. 이 ‘사소한 우연’으로부터 망각되고 삭제된 시간을 찾아가는 특별한 실존적 도정이 시작된다.

“2005년 한국 땅을 처음 밟은 아다니아는 이렇게 말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는 내 꿈이 현실보다 추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소설가로서 그녀는 팔레스타인 문학에 대한 기왕의 편견을 거부한다. 무자비한 폭력과 일상적인 수모를 날 것 그대로 폭로하는 일과는 다른 방식의 저항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알리바바 이야기’에 나오는 신기료장수와 다르지 않게, 인간을 파괴하는 야만에 대해서 지극히 사소한 단서들일망정 하나하나 찾아내고, 한 땀 한 땀 끈기 있게 기워나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 독자들은 작가가 그 사소한 단서들을 가지고 기어이 어떤 거대한 그림을 그려냈는지, 경탄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일』은 여전한 점령하에서도 아다니아의 꿈이 여전히 아름답다는 반증이다.”

-김남일 소설가

『뜨거운 태양 아래서』

Men in the Sun and other Palestinian stories

폭력과 국경의 시대를 살아낸 자들의 문학적 증언

● 작가: 가산 카나파니 Ghassan Kanafani (1936~1972)

● 국내 출판: 윤희환 엮음, 열림원, 2026

● 장르: 중단편집

지음, 윤희환 엮음 | 열림원

2006년 절판 이후 약 이십 년 만에 다시 독자 앞에 놓이다

폭력의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어떻게 존엄이라는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묻는 철학적 텍스트

전쟁과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잠식하며 인간의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해체하는지를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이 작품집이 오늘날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카나파니가 포착한 세계가 과거의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과 점령, 강제 이주와 국경의 배제는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으며, 수많은 삶은 지금도 정치적 언어와 제도적 분류 속에서 익명화되고 통계로 환원되고 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이러한 익명성의 구조를 가로지르며, 삭제된 개별 존재의 얼굴과 목소리를 복원하는 문학적 윤리를 제시한다. 이 작품집의 역사적 의의는 특정 민족사의 증언을 넘어, 폭력의 세계 속에서 인간이 기억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를 보존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있다. 동시에 이 문학의 가치는 재현의 차원을 넘어선다. 카나파니는 사건을 설명하는 대신, 극한의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침묵과 균열, 지연된 감각을 통해 인간 존재의 조건을 드러낸다. 문학은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이 은폐한 것을 감각적으로 복원하는 인식의 형식으로 기능한다. 결국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과거의 비극을 기록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현재의 윤리 감각을 지속적으로 흔들어 깨우며 인간이 인간으로 남는 조건을 끝까지 묻는 문학적 증언이다.

“이야기 속에서 이제 막 죽은 몸과 이십 년 전에 죽은 몸과 오십 년 전에 죽은 몸이, 그리고 현실에서 나크바 이후 칠십팔 년째 그 땅에서 죽어온 몸들이 여태 뜨겁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 속에서 가산 카나파니의 화자들은 신을 향해 반복해 질문한다. 과연 신이 있는지를 물으며 어째서 그가 여기 부재하는지를 묻고, 그들의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지를 묻는다”

-황정은 소설가

가산 카나파니 · غسان كنفاني · Ghassan Kanafani(1936~1972)

가산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 저항문학과 혁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가산 카나파니는 자신의 문학에 저항 정신을 확고히 새겼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삶을 지켜보며 그들의 비극을 써 내려갔다.

가산 카나파니는 1948년 나크바를 겪었고, 그로 인해 가족과 함께 걸어서 레바논의 임시 난민촌으로 피신했다. 이후 가족들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로 이주했다.

카나파니는 다마스쿠스에서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사업기구(UNRWA)의 교사로 일하며 미술과 체육을 가르쳤다. 이후 1955년 쿠웨이트로 가서 교사로 일했고, 1960년에는 베이루트로 옮겨 아랍민족주의운동(ANM)이 발행하던 신문 《알후리야》에서 일했다.

카나파니는 문학을 통해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전달했다. 그는 『12번 침대에서의 죽음』을 통해 난민촌에서의 난민 생활이 팔레스타인 민족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카나파니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등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을 위한 해결책은 집단적 행동뿐이라고 다시 강조했다. 그는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을 위해 싸워줄 것이라는 생각에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랍 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조직을 결성하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의 정치국 위원으로 무장투쟁과 게릴라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선의 정치 전략과 창립 선언문 작성에 기여했다.

카나파니는 1972년 7월 8일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차량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이스라엘 모사드(Mossad,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에 의해 암살되었다. PFLP가 구성한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무게 약 9kg의 폭발물이 차량 좌석 아래에 설치되어 있다가 시동을 거는 순간 폭발했다.

“غسان كنفاني.. أديب ومناضل فلسطيني اغتاله الموساد”، الجزيرة،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The Double Life of a Palestinian Translator: A bridge between wounds and words

가자에서 번역한다는 것은 부서진 문법과 부서진 삶들로 이루어진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 작가: 알라 알카이시 Alaa Alqaisi (1981~)

● 국내 출판: 서제인 엮음, 글항아리, 2026

● 장르: 에세이

팔레스타인 번역가가 된다는 것은, 사라져가는 세계와 그 사라짐을 좀처럼 인정하려들지 않는 세계 사이에서 중개자가 되는 일이다.

“나는 번역한다. 세계가 변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번역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열두 편의 에세이와 열네 편의 시는 모두 기억의 폐허로부터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재앙의 가장자리로부터 쓰였다. 저자는 이 글들이 누군가에게 읽히리라는 기대 없이 탈진 상태에서 써내려갔다. 누군가 증언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존재가 말소되리라는 다급함이 그를 글쓰기로 밀어붙였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결과물은 가자 전쟁에 대한 인식을 올바른 토대 위에 다시 세운다. 언어는 언제나 정신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준다.

저자는 아랍 문학을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실어 나르는 일은 언제나 오역을 무릅쓰는 배신행위인데, 팔레스타인 번역가에게는 이 배신의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헐벗은 상황이 영어로 보도될 때면 비통함은 배부른 이들이 받아들이는 데 버겁지 않도록 순화되고, 매끈한 형태로 다듬어진다. 영어는 원래 외교 언어인 데다 흔히 수동태로 쓰인다. 이는 곧 문장에서 책임의 주체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눈앞에 환영이 어른거리는 굶주림 속에서도 가자의 정확한 현실을 영어로 실어 나르는 데 온 힘을 다한다. 가자 전쟁 동안, 아랍어로만 쓰여 있었더라면 잔해 너머로 결코 다다르지 못했을 목소리들을 영어로 옮겼다. 세계의 부정확한 인식과 맞서 싸우는 그의 문체는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력을 보임으로써 오히려 독자의 감정을 근간부터 뒤흔든다.

– 알라 알카이시. (2026). 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열림원.

『완벽한 피해자』

Perfect Victims: And the Politics of Appeal

피해자성만을 내세워야 하는 인간화의 역설을 밝혀내다

● 작가: 모함메드 엘쿠르드 Mohammed el-Kurd (1998~)

● 국내 출판: 박종주 엮음, 마티, 2026

● 장르: 에세이

팔레스타인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통렬한 해부와 증언

“독자가 그 복잡하고 모순적인 집단과, 그리고 그저 우리 가운데 온화하고 관대하게 여겨지는 이들만이 아니라-아버지들만이 아니라-투사들과도 씨름하기를 바란다.”-작가의 작업 노트 중에서

연대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의 무고함을 강조하고, 그들을 자유주의적 기준에서 존중하고 공감할 만한 형태로 묘사한다. 그럴수록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작가는 지적한다. 호소의 정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간의 자격을 두고 오디션을 봐야 하는 권력 구조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점령당한 예루살렘 출신 작가이자 활동가인 저자 모함메드 엘쿠르드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서구의 호감과 신뢰를 살만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호소의 정치’라 명명한다. 이는 팔레스타인인에게 분노와 저항을 박탈하고 그저 수동적으로 고통받는 ‘완벽한 피해자’가 되길 요구한다. 이 책은 식민주의 체제의 이 같은 작동 방식을 통렬하게 해부하며, 그 틀을 거부하고 저항과 새로운 미래를 기획하는 언어를 묻는다.

이 책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스라엘 및 적극적인 공모국들에 한정되지 않는다. 연민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부지중에 피해자상(像)을 재생산해온 지지자도 포함한다. 연대자들은 팔레스타인인의 무고함을 강조하고, 그들을 자유주의적 기준에서 존중하고 공감할 만한 형태로 묘사한다. 엘쿠르드는 그럴수록 함정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한다. 호소의 정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인간의 자격을 두고 오디션을 봐야 하는 권력 구조를 바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구조 안에서 인간성을 입증할 수단을 갖지 못한 팔레스타인인, 식민 폭력에 (때때로 총, 화염병, 돌멩이, 주먹을 들고) 맞서는 팔레스타인인은 권리와 존엄을 갖고 살아갈 자격을 잃는다.

-모함메드 엘쿠르드. 완벽한 피해자. 마티

모함메드 엘쿠르드 · محمد الكرد · Mohammed el-Kurd (1998~)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출신으로, 시인이자 작가, 언론인, 활동가이다. 2021년 헤이마켓 북스에서 출간된 『리프카(Rifqa)』의 저자이기도 하다.

2021년에는 쌍둥이 여동생 무나 엘쿠르드와 함께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두 남매는 ‘#SaveSheikhJarrah’ 풀뿌리 캠페인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이 운동은 정착민 식민주의에 반대하며, 자택에서 강제 퇴거당할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 세계에서 강연과 공연을 해왔으며, 프린스턴대학교의 2023년 연례 에드워드 사이드 추모 강연에서 기조연설을 맡았다. 무함메드 엘쿠르드는 《더 네이션(The Nation)》의 초대 팔레스타인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MOHAMMED EL-KURD”, MOHAMMED EL-KURD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

(Conversations Between Palestine and Korea is a Korean literary anthology featuring a dialogue between Palestinian and Korean writers. It has no separate English or Arabic edition.)

한국 작가 22인과 팔레스타인 작가 4인이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대화적 문학집

● 작가: 김남일, 나희덕, 방현석, 신경림, 오수연, 아다니야 쉬블리, 자카리야 무함마드, 카파판니 외 18인 지음, 엮음

● 국내 출판: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 기획 및 번역, 열린길, 2007

● 장르: 대화적 문학집

“<대화>는 서로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신호 보내기”이자” 어깨 걸고 함께 버티기였다.

“한반도의 분단장벽과 팔레스타인의 분리장벽은 실은 별개의 장벽이 아니며, 이스라엘 불도저에 4만 그루 올리브 나무가 밀리고 새만금에서 백합과 농발게가 사라진 것도 다른 사건이” 아니다

– 서문 중에서, 오수연

도서출판 열린길(대구대학교 독립출판브랜드)의 [대안문화총서] 시리즈 첫 번째 작품으로 김남일, 나희덕, 방현석, 신경림, 오수연 등 대표적 현역 한국작가 22인과 아다니야 쉬블리, 자카리아 무함마드, 키파판니 등 팔레스타인 작가 4인이 각각 주고받은 편지를 1쌍씩 묶은 대화적 문학집이다.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예술가, 평화운동가, 시민들이 서로 교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인 <팔레스타인을 잇는 다리>가 기획하여 지난 2006년 7월말부터 2007년 5월말까지 편지를 교환하고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했다. 그 내용을 다듬고 보완해 출간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터전에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60여 년의 고통, 절망, 슬픔과 아울러 사랑, 희망, 분노, 기쁨이 팔레스타인 작가들의 시선에 투영돼 있다. 지구촌 최장.최대 분쟁지라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저널리즘적 수준을 넘어 작가들의 시선에 용해되어 인간의 삶까지 성찰하고 살피는 본질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팔레스타인 측에선 자카리아 무함마드(시인), 키파 판니(시인), 아다니아 쉬블리(소설가 극작가), 바쉬르 샬라쉬(시인)씨가 번갈아 글을 썼다. 모두 방한 경험이 있음에도 국내엔 아직 생소하지만, 현지에선 지명도 있는 작가들이다. 무함마드씨는 아랍권에서 손꼽히는 중진 시인이고, 여류 작가 쉬블리씨는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돋보이는 신진 작가로 유럽에도 작품이 번역됐다.

“딱딱한 정치 분석이 아닌, 삶에 대한 감성적 글을 보내줄 수 있는 필진으로 꾸렸다”(소설가 오수연)는 기획 의도대로, 네 사람은 거대 담론 대신 개인 및 일상 차원의 비극성을 전하는데 집중한다. 판니씨는 이스라엘군의 잦은 테러로 인해 “누군가와 ‘그래, 또 봐!’하고 헤어져 놓고도 과연 그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악몽 같은 일상을 전한다.

이스라엘 건국으로 고향을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의 무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친구의 가방엔 “언젠가는 고향집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망자의 고향집 열쇠가 가득했다고 무함마드씨는 증언한다.

감각적 문장을 구사하는 아다니아씨-그녀는 이스라엘에서 거주한다-는 자신이 찬 시계가 멎어 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공항 공무원들에게 여러 시간 취조 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아마도 내 시계는 나를 위로하려고 그 모든 조사와 지연이 단 1분도 걸리지 않은 것처럼 굴었을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슬픈 위로를 전한다. 외신이 중계하는 폭력의 스펙터클에선 알아챌 수 없었던 내밀한 사연들이 팔레스타인 비극의 심연을 드러낸다.

네 작가가 전하는 슬픈 소식에 부쳐, 시인 신경림 김정환 황인숙 나희덕씨, 소설가 현기영 이경자 최인석 방현석 전성태씨 등 한국 작가 22명은 따뜻한 위로와 굳건한 연대의 손길을 내민다.

작가들은 ‘이스라엘 장벽’을 한국의 휴전선에 빗대거나(소설가 정도상) ‘대추리 사태’의 문제의식을 팔레스타인 현실에 대한 이해로 확장(르포문학가 김순천)하기도 하고, 돈벌이를 위해 장벽을 타넘어 이스라엘로 가려다 총살당한 열다섯 소년의 이야기에 가난에 쫓겨 홀로 상경했던 자신의 열다섯 시절을 겹치며(박영희 시인) 애달픈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이훈성 기자, “책과세상/ 팔레스타인과 한국의 대화”, 2008.03.28,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0803281856443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