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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강연 발표 전문

가자의 6명의 여성, 6개의 이야기

가자 출신 재한 팔레스타인인

2년 넘게 가자지구에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둠의 심장부에서도 결코 꺼지기를 거부하는 촛불들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곳에서 생명을 노래하고, 폭격 소리만 들리는 곳에서 웃음을 지으며, 인종학살의 지옥 속에서도 자비심을 품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는 그저 울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감을 주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이 여성들 한 명, 한 명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영웅이며, 모든 이야기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1. 마리암 아부 다가 (Mariam Abu Dagga): 카메라의 순교자와 마지막 메시지

마리암은 무기를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33세의 마리암 아부 다가는 평범한 저널리스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이미지로 승화시킨 여성이었습니다. 몇 년 전, 그녀는 ‘위대한 귀환 행진’[1]을 취재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섰습니다. 그녀는 한 청년이 저격수의 총에 맞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며칠 후, 그녀는 그 청년이 자신의 남동생이었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생의 죽음을 촬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그녀는 “세상은 보아야 한다” 하고 말하면서 결코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지난 전쟁 기간 동안 그녀는 굶주린 아이들을 촬영했습니다. 그중에는 가녀린 몸이 수의에 감겨 땅에 닿지 않도록 벽돌 위에 놓인 어린 자밀 알 나자르도 있었습니다. 마리암은 어린 아이들의 몸으로 기어드는 죽음을 목격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날 아침, 마리암은 동료의 일손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세르 병원으로 가겠다고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길은 위험하고 폭격은 무자비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죽더라도 울지 마세요. 내 시신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가 떠나기 전에 나를 충분히 눈에 담아주세요.”

그녀는 주머니에 유서를 품고 있었습니다. 13살 아들 가이스(Ghaith)에게 쓴 글이었습니다. “엄마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렴. 네가 커서 결혼해 딸을 낳으면 이름을 마리암이라고 지어다오.” 가이스는 멀리 아랍에미리트(UAE)에 있었습니다. 1년 반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한 그녀의 마지막 소원은 아들을 한 번 안아보는 것이었습니다.

8월 25일, 병원 주변에 첫 번째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마리암의 동료가 쓰러졌고, 그녀는 그를 돕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평생을 삶을 향해 달려 왔던 것처럼, 그녀는 죽음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어 두 번째 미사일이 떨어졌고, 마리암은 쓰러졌습니다. 불과 며칠 전 그녀는 친구들에게 “나 때문에 울지 말라”라고 했지만, 마리암, 우리는 오늘 웁니다. 당신이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 유일한 진실이었기에 우리는 웁니다.

아들에게 남긴 마리암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가이스,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렴. 인간답게 살 거라. 자유로워지렴.”

2. 아미라 알 아술리 (Amira Al-Assouli): 총알을 향해 달린 의사

공포의 순간, 아미라 박사는 모두가 도망치는 곳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나세르 병원은 포위된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저격수들이 구석구석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20일 넘는 기간 동안  움직이는 사람은 누구든 살해당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병원 입구에서 한 청년이 쓰러졌습니다. 모두가 숨어 있는 동안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했지만, 아미라 박사만은 달랐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인 아미라 알 아술리는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고 몸을 숙인 채 달렸습니다. 그는 총알을 향해, 죽음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렸습니다.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신께서 내 마음에서 공포를 거두어 가셨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인간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 영상은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아랍의 팔레스타인 여성이 낯선 이를 구하기 위해 저격수들을 뚫고 달리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녀는 청년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해 병원 안으로 데려왔습니다. 몇 분 후, 부상자를 구하려던 또 다른 의사가 쓰러졌습니다. 아미라는 그가 숨을 거두기 전 ‘샤하다'(이슬람 신앙 고백)를 읊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그의 시신을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아미라 역시 실향민입니다. 칸 유니스 동쪽 마을인 아바산 알 자디다에 있던 그녀의 집은 파괴됐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지내며 24시간 쉬지 않고 일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우리는 타인을 구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보면 단 1초도 나 자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쟁 전 아미라는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머물며 안전하게 살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고국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녀는 선언했습니다. “텐트에서 아이를 낳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내 자리는 그곳입니다.”

여성의 날, 우리는 여전히 굳건히 서 있는 아미라 박사 앞에 서 있습니다. 죽음이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는 시대에 내일의 아이들을 받아내는 사람, 아미라의 맹세는 이렇습니다. “생명을 구하겠다고 맹세합니다. 설령 내 목숨을 바쳐야 할지라도 말입니다.”

3. 바얀 아부술탄 (Bayan Abusultan): 죽음에 맞선 생존자

바얀은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왜 자신이 살아남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바얀 아부술탄은 가자지구의 기자, 예술가, 의사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바닷가 작은 카페 ‘알 바카’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곳은 가자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종학살이 한창이던 어느 날, 미사일이 덮쳤습니다. 단 몇 초 만에 2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얀은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피에 젖은 채 찍힌 그녀의 모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공격 직후 그녀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는 하루 더 점령군을 저주하기 위해 살아남았다.”

바얀은 저널리스트이자 활동가입니다. 그녀는 학살 현장의 사진을 공유하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적고, 범죄를 기록했습니다. 자신이 표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말했습니다. “바다는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바다조차 폭격당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친구이자 예술가인 아미나 알 살미도 그 공격으로 사망했습니다. 동료 사진작가 이스마일 아부 하타브도 숨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프레스’(PRESS·언론) 조끼를 입힌 채 묻어주었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하나뿐인 남동생도 이번 인종학살 도중 그녀의 눈앞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바얀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외칩니다. “가자에서 우리는 단순히 숫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못다 이룬 꿈입니다. 쓰이지 못한 시이고, 불리지 못한 노래입니다.”

여성의 날, 바얀은 우연히 살아남은 가자의 모든 여성, 그리고 매일 아침 “왜 나일까? 왜 그들은 죽고 나는 살아남았을까?”라고 자문하는 모든 여성을 대변합니다. 바얀은 맹세합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글을 쓸 것입니다.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다른 모든 이들을 죽였듯 나를 죽일지라도 말입니다.”

4. 도하 알 사이피 (Doha Al-Saifi): 세 아이를 잃고 얼굴을 잃은 어머니

4월 4일, 명절인 이드(Eid)의 아침이었습니다. 도하 알 사이피는 아이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수개월간의 굶주림과 공포, 폭격 끝에 그녀는 언니가 피신해 있는 다르 알 아르캄 학교로 아이들을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엔 대가족이 모여 웃음과 온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13살 딸 리탈은 옷가지를 챙기는 것을 도왔고, 10살 누르는 사촌들과 놀기 위해 작은 나뭇가지를 모았습니다. 하늘색 눈을 가진 4살 막내 오사마는 신이 나서 뛰어다녔습니다. “엄마, 우리 가서 놀 거예요? 사탕도 먹을 거예요?”

도하는 아이를 꽉 껴안았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포옹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학교에 도착한 지 불과 30분 만에 미사일이 떨어졌습니다. 도하는 자신이 어떻게 쓰러졌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파편이 어떻게 피부를 찢었는지, 턱과 팔이 어떻게 부러졌는지, 아름다웠던 얼굴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녀는 6일 후, 사고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병원에서 깨어났습니다. 6일 동안 그녀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사이, 아이들은 하늘에서 엄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통증이 온몸을 쥐어짰습니다. 그녀는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이들은 어디 있나요?” 간호사는 침묵 속에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물었습니다. “리탈은요? 누르는요? 오사마는요?”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리탈, 누르, 오사마 세 아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요. 언니와 언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순간에 가족 1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하는 울지 않았습니다. 울 수 없었습니다. 그 상처는 눈물보다 컸습니다. 며칠 후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더는 고통받지 않게 돼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더는 굶주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막내 오사마… 도하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그녀는 아이를 지켜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치료를 위해 요르단으로 이송됐습니다. 현재 그녀는 그곳의 작은 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11살 아들 사이프(Saif)와 살고 있습니다. 사이프의 눈에는 이미 노인의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세 아이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도하는 검은 옷을 입고 있고, 사이프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엄마를 지키려는 듯 문 곁에 파수꾼처럼 서 있습니다.

도하는 일을 계속하며 글을 쓰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말하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명을 질러야 합니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꿈과 야망입니다. 리탈은 의사가 되고 싶어 했고, 누르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오사마는… 그저 내 곁에 있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매일 밤 도하는 사진을 봅니다. 휴대폰으로 아이들의 영상을 봅니다. 웃고 있는 리탈, 그림을 그리는 누르, 공을 쫓아 달려가는 오사마를 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가자로 돌아갈 겁니다. 아직 보지 못한 아이들의 무덤을 보러 갈 겁니다. 그리고 사이프를 위해 살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한 약속입니다.” 도하 알 사이피는 세 아이를 잃고 넷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입니다. 결코 아물지 않을 상처를 품고도 여전히 서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납니다.” 그녀는 맹세합니다. “가자로 돌아가 아이들의 무덤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사이프를 위해 살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약속입니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통증이 온몸을 쥐어짰습니다. 그녀는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내 아이들은 어디 있나요?” 간호사는 침묵 속에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다시 물었습니다. “리탈은요? 누르는요? 오사마는요?”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리탈, 누르, 오사마 세 아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요. 언니와 언니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순간에 가족 17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도하는 울지 않았습니다. 울 수 없었습니다. 그 상처는 눈물보다 컸습니다. 며칠 후 그녀는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더 이상 굶주리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막내 오사마… 도하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엄마, 무서워요.” 그녀는 아이를 지켜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치료를 위해 요르단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현재 그녀는 그곳의 작은 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11살 아들 사이프(Saif)와 살고 있습니다. 사이프의 눈에는 이미 노인의 슬픔이 서려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세 아이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도하는 검은 옷을 입고 있고, 사이프는 마치 세상으로부터 엄마를 지키려는 듯 문 곁에 파수꾼처럼 서 있습니다.

도하는 일을 계속하며 글을 쓰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 말하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명을 질러야 합니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꿈과 야망입니다. 리탈은 의사가 되고 싶어 했고, 누르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오사마는… 그저 내 곁에 있고 싶어 했을 뿐입니다.” 매일 밤 도하는 사진을 봅니다. 휴대폰으로 아이들의 영상을 봅니다. 웃고 있는 리탈, 그림을 그리는 누르, 공을 쫓아 달려가는 오사마를 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가자로 돌아갈 겁니다. 아직 보지 못한 아이들의 무덤을 보러 갈 겁니다. 그리고 사이프를 위해 살 것입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한 약속입니다.” 도하 알 사이피는 세 아이를 잃고 넷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입니다. 결코 아물지 않을 상처를 품고도 여전히 서 있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나는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죽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납니다.” 그녀는 맹세합니다. “가자로 돌아가 아이들의 무덤을 찾겠습니다. 그리고 사이프를 위해 살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약속입니다.”

5. 타스님 알 함스 (Tasneem Al-Hams): 죽음에서 돌아와 이야기를 전하는 간호사

10월 2일 아침, 타스님은 여느 때처럼 흰 가운을 입었습니다. 24세의 간호사인 그녀는 쿠웨이트 병원과 아부 유수프 알 나자르 병원, 그리고 알 마와시의 의료 거점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부상자들이 기다리는 일터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이 가자의 자유가 허락된 마지막 아침인 줄 몰랐습니다. 칸 유니스 서쪽의 의료 거점에 도착하기 전, 작은 트럭 한 대가 그녀를 가로막았습니다. 사복 차림의 무장 괴한 4명이 뛰어내렸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붙잡아 때리고, 입을 막고,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구조하려는 사람들을 흩어놓기 위해 공중에 총을 쐈습니다. 트럭은 점령군이 통제하는 라파 지역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사라지기 전, 타스님은 모르는 번호로부터 협박과 갈취 메시지를 받아 왔지만 업무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만약 내가 사라지더라도 나를 잊지 말아 줘. 내가 여기 있었다고 세상에 말해 줘.” 가자지구 야전병원의 책임자인 그녀의 아버지 마르완 알 함스 박사도 두 달 전 알 마와시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납치됐습니다. 사복 차림의 무장 괴한들은 그의 다리에 총을 쏘고 함께 있던 사진작가 타메르 알 자닌을 살해했습니다.

그 후 지옥이 시작됐습니다. 타스님은 아슈켈론, 메기도, 다몬, 라믈라, 하샤론 등 여러 교도소를 전전했습니다. 그녀는 산소가 거의 없는 어두운 금속 상자에 갇혀 이송됐습니다. 한 달 동안 햇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인간임을 느끼기 위해 손톱으로 벽에 형제들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아슈켈론에서 조사관들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곳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왜 자신이 납치됐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압박하기 위한 심리적 무기이자 인질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취조실에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였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늘 굳건했던 마르완 알 함스 박사가 의자에 묶여 있었습니다. 딸을 본 그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늘 강했던 그였지만, 그날만은 울었습니다.

그녀는 달려가 아버지를 껴안았습니다. “울지 마세요,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의 손과 발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우리 모두의 위에 있단다.” 그 순간 이후 타스님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식욕을 잃고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습니다.

교도소를 옮겨 다니며 그녀는 구타와 굴욕, 거의 발가벗겨진 채로 진행되는 치욕적인 수색을 견뎌야 했습니다. 라믈라 교도소에서는 그녀를 계단 아래로 밀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벌레가 가득한 독방에서 화장실 안까지 감시하는 카메라 아래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의 여성 인질들이 그녀를 안아줬습니다. 그들은 감옥을 회복과 저항의 학교로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통해 팔레스타인 여성이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두 달 후인 11월 27일, 그녀는 석방됐습니다. 굶주림으로 지치고 창백해진 얼굴로 그녀는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가족 두 명의 팔에 의지해 겨우 서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이 아버지의 안부를 물었지만, 그녀는 고통 섞인 목소리로 답했습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그저 아버지가 풀려나기만을 바랄 뿐이에요.”나중에 그녀는 말했습니다. “돌아와서 기뻤지만 기쁨은 온전치 않았습니다. 나를 안아 줄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으니까요. 몸은 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창살 뒤에 있습니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나의 자유는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에 납치되었던 간호사 타스님 알 함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점령군이 자신을 멈추게 하려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매일 아침 흰 가운을 입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녀는 선언합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곳에 계십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실 때까지 나는 이곳에 남아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를 것입니다. 이 길을 계속 가겠습니다.”

6. 야킨 하마드 (Yaqeen Hamad): 가자 지구 최연소 인플루언서

야킨은 11살이었습니다. 그녀에겐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기로 결심한 어린 소녀 야킨 하마드. 겨우 11살의 나이에 그녀는 가자 지구에서 가장 어린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였습니다. 그녀는 실향민 아이들의 영상을 찍었습니다. 장난감과 옷, 사탕을 나눠 줬습니다. 마지막 영상 중 하나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인종학살 중에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여기 있습니다.”

그녀는 생존법에 대해서도 가르쳐 줬습니다. 폭격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법, 숨는 법, 물을 찾는 법 등입니다. 그녀는 오빠 모하메드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계속해 줘. 아이들이 혼자 울게 내버려 두지 마.”

2025년 5월 23일, 데이르 알 발라에 있는 그녀의 집이 폭격당했습니다. 야킨은 안에 있었습니다. 구조되기까지 그녀는 몇 시간 동안 잔해 아래 갇혀 있었습니다. 발견됐을 때 그녀는 너무 작았고 차갑게 식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작은 유해는 꽃들에 둘러싸여 옮겨졌습니다. 자원봉사자 친구들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야킨은 죽었지만, 가자의 아이들이 인류의 심장이라는 우리의 야킨(‘확신’이라는 뜻)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녀의 삼촌은 적신월사 구급대원이었고, 오빠는 구호팀에서 일했습니다. 온 가족이 사람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야킨은 늘 말했습니다. “나 같은 아이들을 치료해 주는 의사가 되고 싶어요.”

여성의 날,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크고 분명하게 외칩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그녀는 진정한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지옥 한가운데서 가자의 아이들에게 기쁨의 순간을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울고 있을지라도, 아이들을 웃게 만드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결론

여섯 명의 여성. 여섯 개의 이야기. 빛의 여섯 얼굴. 자신을 위해 울지 말아 달라고 했던 마리암, 총알을 향해 달렸던 아미라, 피 흘리는 중에도 글을 썼던 바얀, 아이들을 묻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도하, 점령군의 감옥 속으로 사라졌던 타스님, 그리고 아이들을 웃게 했던 야킨.

여성의 날을 맞아 우리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뉴스 보도 속의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단순한 희생자가 아닙니다. 당신들은 침묵하기를 거부하는 진실입니다. 당신들이 바로 팔레스타인입니다. 당신들이 언제나 눈부신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자에 평화가 깃들기를. 죽음의 태반 속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당신들의 여성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1] 2018년~2019년 가자지구의 국경지대에서,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때 쫓겨난 난민들의 돌아갈 권리를 요구하며 벌어진 시위. 이스라엘은 이 시위를 (주로 저격수를 배치해) 잔혹하게 탄압해, 팔레스타인인 최소 223명을 살해했으며 그중 46명은 18세 미만이었음.


Full Text of the Commemorative Forum for International Women’s Day 2026

Six Women Six Stories from Gaza

Palestinian from Gaza living in Korea

For more than two years, darkness has been enveloping Gaza. But from the heart of this darkness, some candles refused to be extinguished. Some women sang life in a place where there was no life, laughing in a place that only hears bombing, and carrying mercy within the hell of genocide. On International Women’s Day, we will not just cry… we will listen to inspiring stories. Each of these women is a hero of a story, and every story carries light in the midst of darkness.

1. Mariam Abu Dagga: Martyr of the camera and the final message

Mariam did not carry a weapon. She carried a camera. Mariam Abu Dagga, 33, was not a journalist like the others. She was a woman who turned pain into image. A few years ago, she stood with her camera to cover the Great March of Return. She filmed a young man getting shot by a sniper. Some days later, she realized that the young man was her brother, and that she unknowingly filmed his death. Ever since that day, she vowed to keep going, “the world needs to see”, she used to say.

In the last war, she filmed starved children. Among them, the child Jamil Al-Najjar, with his frail little body wrapped in a shroud and put on bricks so that it doesn’t touch the ground. Mariam saw and filmed death crawling to the bodies of little children.

On that morning, Mariam told her friends that she’s going to Nasser Hospital, as her colleague there needed help. She knew that the roads were dangerous, and that the bombing was merciless, but she said: “If I die, do not cry. Sit next to my body, talk to me, get enough of me before I leave”.

She was keeping her will in her pocket. She wrote to her 13 year old son, Ghaith: “I want you to make me proud. When you grow up and get married and have a daughter, name her Mariam”. Ghaith was far away, in the UAE. She hadn’t seen him in a year and a half, and her last wish was to hug him.

On August 25, the first missile dropped around the hospital. Mariam’s colleague fell, so she ran to help him. She was running towards death the same way she ran towards life throughout her whole existence. Then the second missile dropped, and Mariam fell. Just a few days before, she was telling her friends: “Do not cry over me”. But we are crying today, Mariam. We are crying because you were the only truth that never lied.

I believe that Mariam’s final message to her son will accompany all of us forever: “Ghaith, be proud of your mom. Be a human. Be free.”

2. Amira Al-Assouli: The doctor who ran towards bullets

In a moment of fear, doctor Amira ran to a place from which everyone was fleeing.

Nasser Hospital was under siege. Israeli snipers controlled every corner. For more than twenty days, any person who moved was killed. Suddenly, a young man collapsed at the hospital entrance. He was bleeding while everyone was hiding. Everyone was afraid. Except her.

Amira Al-Assouli, an ob/gyn, took off her winter coat, bent down, and ran. She ran towards the bullets. She ran towards death without thinking. She said later: “God removed fear from my heart when I felt that someone needed me. I didn’t think about myself; I thought about saving a human being.”

The video spread around the world. An Arab, Palestinian woman, running towards snipers to save a stranger. When she reached him, she helped him and brought him into the hospital. Minutes later, another doctor fell while he was trying to save an injured person. Amira saw him recite the shahada (the islamic declaration of faith) before he died. She carried his body to the morgue with her colleagues.

Amira is also displaced. Her home in Abasan Al-Jadidah, a town east of Khan Younis, was destroyed. She lives in the hospital and works 24 hours, non-stop. She says: “We are programmed to save others. When I see a patient who needs me, I don’t think even for a second about myself.”

Before the war, Amira was in Egypt. She could have stayed. She could have lived in safety. But she insisted on returning to her homeland. She declared: “There are women giving birth in tents. There are ]children dying. My place is there.”

On Women’s Day, we stand before Dr. Amira, who remains standing. The one delivering the children of tomorrow at a time where death haunts everywhere. Amira’s vow is: “I swear to save lives. Even if it costs me my own.”

3. Bayan Abusultan: The survivor who defied death

Bayan survived. But she doesn’t know why. Bayan Abusultan was sitting at Al-baqa, a small café in Gaza by the sea, that had become a meeting point for journalists, artists, and doctors. It was the only place where Gaza could breathe a little. Suddenly, during the genocide, a missile struck. 24 people were killed in a matter of seconds. Bayan was covered in blood. Images of her, half-soaked in her own blood, remain vivid in people’s ]memory. After the attack, she wrote on Facebook: “We survived to curse the occupation for another day.”

Bayan is a journalist and an activist. She shared photos of massacres, writing down names, and documenting crimes. She knew she was a target, but she said: “The sea was our only refuge. But even the sea is being bombed now.” Her friend, the artist Amina Al-Salmi, was killed in the same attack. Her colleague, the photographer Ismail Abu Hattab, was also killed. They buried him with his press vest. Even her only brother was killed in front of her eyes during this genocide.

Bayan continues to write, and to shout: “In Gaza, we are not just numbers. We are unfinished dreams. We are unwritten poems. We are unsung songs.”

On Women’s Day, Bayan represents every woman in Gaza who survived by chance, every woman who wonders every morning: “Why me? Why did they die, and why did I survive?” Bayan vows: “I will write until my very last breath. I will tell the truth. Even if they kill me, like they killed everyone else.”

4. Doha Al-Saifi: A mother who mourned three children and lost her face

It was the morning of Eid, the 4th April. Doha Al-Saifi wanted to make her children happy. After months of hunger, fear, and bombardment, she decided to take them where her sister was displaced and sheltered, in Dar Al-Arqam School. There, they would all be together: the extended family, the laughter, the warmth.

Her daughter Rital, 13, was helping her carry clothes. Nour, 10, was collecting small sticks to play with her cousins. And Osama, only 4 years old, with eyes the color of the sky, was jumping with excitement: “Mom, are we going to play? Are we going to eat sweets?”

Doha held him tight. She did not know it would be their last hug. Only half an hour after their arrival at the school, a missile struck. Doha doesn’t remember how she fell. She doesn’t remember how the shrapnel tore through her skin. She doesn’t remember how her jaw and arm were broken, nor how her beautiful face was disfigured. She woke up six days later in a hospital far from where she was. For six days, she was between life and death, while her children looked for her in the sky.

She opened her eyes, pain squeezed through her body. She asked the nurse: “Where are my children?” The nurse looked at her in silence. She asked again: “Where’s Rital? Nour? Osama?”

Then she realized. All three of them, Rital, Nour, and Osama, were gone. Her sister and her children too. Seventeen members of her family were killed in a single moment. Doha did not cry. She could not. The wound was greater than the tears. Days later she said: “Praise be to God that they are no longer suffering. They are no longer hungry. You can’t imagine how painful it is to watch your children starving and you’re unable to do anything.” As for little Osama… the last thing Doha remembers before losing consciousness was his voice: “Mom, I’m scared.” She wanted to protect him but she couldn’t. She was transferred to Jordan for treatment. She lives there now in a small room with her only surviving child, Saif, 11 years old, whose eyes already carry the sorrow of old men. On the table, there are photos of the three children. Doha wears black and Saif stands by the door like a guard, as if trying to protect his mother from the world.

Doha continues to work. She also continues to write, and to raise her voice: “They will not speak for us. We must scream. We are not numbers, we are dreams and ambitions. Rital dreamed of becoming a doctor, Nour dreamed of becoming a teacher, and Osama… he only dreamed of staying with me.” At the end of every day, Doha looks at the photos. On her phone, she watches videos of her children. Rital laughing, Nour drawing, Osama running after a ball.

She says: “I will return to Gaza. I will see their graves, as I haven’t seen them yet. Then I will live for Saif. This is my promise to them.”

Doha Al-Saifi is a mother who lost three children and is raising the fourth. She’s a woman who carries a wound that will never heal, yet she still stands. She says: “I am alive. They want us to die, but we are reborn every day.” She vows: “I will return to Gaza, I will visit my children’s graves. Then I will live for Saif. This is my promise.”

5. Tasneem Al-Hams: A nurse who returned from the dead to tell her story

On the morning of 2nd October, Tasneem put on her white coat as she always did. She was 24, a nurse working at Kuwait Hospital and Abu Yusuf Al-Najjar Hospital, and a medical point in Al-Mawasi. She was on her way to work, where the wounded patients were waiting for her.

She didn’t know that it was the last morning for Gaza’s freedom. Before she reached the medical point west Khan Younis, a small truck intercepted her. Four armed men in civilian clothes jumped out. They grabbed her, beat her, gagged her, and dragged her away by force. They fired shots into the air to disperse people who tried to rescue her. The truck sped toward Rafah, the area controlled by the occupation army.

Before her disappearance, Tasneem had been receiving threats and blackmail messages from unknown numbers, yet she continued her work. She used to tell her friends: “If I disappear, don’t forget me. Tell the world that I was here.” Her father, Dr. Marwan Al-Hams, director of Gaza’s field hospitals, had been abducted two months earlier in the same way: by armed men in civilian clothes in Al-Mawasi area. They shot him in the leg and killed the photographer Tamer Al-Zaanin who was with him.

Then hell began. Tasneem was moved between several prisons: Ashkelon, Megiddo, Damon, Ramla, and Hasharon. She was transported in a dark metal box that barely contained any oxygen. For an entire month she did not see daylight. She wrote the names of her siblings on the wall with her nails to feel that she was still human.

In Ashkelon, investigators told her that her father was there. She understood why she had been kidnapped. She was a hostage used as a psychological weapon to pressure her father.

The most painful moment of her life was when she saw him in an interrogation room. Dr. Marwan Al-Hams, the man who always stood firm against everything, was tied to a chair. When he saw her, he cried. He had always been strong, but that day he cried.

She rushed toward him and hugged him: “Don’t cry, Father,” she told him. She kissed his hands and feet. Then she heard him say: “Palestine is above us all.” After that moment, Tasneem collapsed completely. She lost her appetite and lost ten kilograms of weight.

She was moved between prisons, subjected to beatings, humiliation, and degrading searches while nearly naked. In Ramla prison, they pushed her down the stairs. She lived in a cell full of insects, under camera surveillance even inside the bathroom. But the women hostages in that prison embraced her. They turned prison into a school of resilience. From them, she learned that a Palestinian woman doesn’t break.

After two months, on 27 November, she was released. She walked out slowly, with a pale face, exhausted from hunger. She leaned on the arms of two family members, barely able to stand. They asked her about her father, but she answered in a voice full of pain: “I don’t know anything. I only want his release.”

Later she said: “I was happy to return, but my joy was incomplete. My father was not there to hug me. My body came out, but my heart remained behind the bars. My freedom will not be complete until the day my father returns home.” Tasneem Al-Hams, the nurse who was kidnapped by death, came back to tell her story. She’s still waiting for her father. She continues to wear her white coat and goes to the hospital every morning, because she knows that the occupation wants her to stop. And she will not stop. She declares: “My father is still there. Until his return, I will remain here, following his footsteps. I will continue the path.”

6. Yaqeen Hamad: The youngest influencer in Gaza

Yaqeen was 11 years old. She had a smile that did not resemble war.Yaqeen Hamad, the little girl who decided not to be afraid. At just eleven, she was the youngest social media influencer in Gaza. She filmed videos of displaced children. She distributed toys, clothes, and sweets. In one of her last videos, she said: “Despite the war, despite the genocide, we are here to bring joy to the children.”

She gave lessons on survival: how to protect yourself from the bombing, how to hide, and how to find water. She used to say to her brother Mohammed: “If I die, keep going. Don’t leave the children crying alone.”

On the 23rd May, 2025, her family’s home in Deir al-Balah was bombed. Yaqeen was inside. She remained beneath the rubble for hours before they found her. She was very small, very cold. Her small remains were carried among flowers. Her volunteer friends wrote: “Yaqeen was killed, but our yaqeen (i.e, certainty) remains unshaken, that Gaza’s children are the heart of humanity.”

Her uncle was a paramedic with the Red Crescent. Her brother worked with relief teams. The whole family was at the service of people. Yaqeen used to say: “I want to become a doctor to heal children like myself.”

On Women’s Day, we scream her name loud and clear, because she was a woman in spite of her young age. Because she allowed the children of Gaza moments of joy in the middle of unimaginable hell. Her message was: “Don’t stop making children laugh, even if we are crying.”

In conclusion

6 women. 6 stories. 6 faces of light. Mariam who asked them not to cry for her, Amira who ran toward bullets, Bayan who still writes in spite of the blood, Doha who buried her children and promised to come back, Tasneem who disappeared in the occupation’s prisons, and Yaqeen who made children laugh.

On women’s day, we tell them: You are not mere numbers in a news report. You are not mere victims You are the truth that refuses to be silenced. You are Palestine. May you always be the shining light. Peace on you, oh Gaza. Peace on your women who create life in the womb of death.


النص الكامل لمؤتمر يوم المرأة العالمي 2026

ست نساء، ست حكايات من غزة

فلسطينية من غزة تقيم في كوريا

لأكثر من عامين ولا يزال الظلام يغطي غزة. ولكن من قلب هذه العتمة، كانت هناك شموع تأبى أن تنطفئ. كانت هناك نساء ينشدن الحياة حيث لا حياة، يحملن الضحكات حيث لا صوت إلا القصف، يحملن الرحمة في جحيم الإبادة. في يوم المرأة العالمي، لن نبكي فقط… بل سننصت للقصص الملهمة. لكل واحدة من هؤلاء البطلات حكاية. ولكل حكاية دقائق من النور في وجه الظلام.

1.مريم أبو دقة: شهيدة الكاميرا والوصية الأخيرة لم تكن مريم تحمل سلاحاً. كانت تحمل كاميرا. مريم أبو دقة، ابنة الـ33 عاماً، لم تكن صحفية عادية. كانت امرأة حوّلت الألم إلى صورة. قبل سنوات، وقفت بكاميراها تغطي مسيرات العودة الكبرى. صورت شاباً يسقط برصاص القناصة. بعد أيام، عرفت أن الشاب كان أخاها . صورت موته وهي لا تعلم. ومنذ ذلك اليوم، قررت أن تستمر. “يجب أن يرى العالم”، كانت تقول. في الحرب الأخيرة، كانت تصور أطفال المجاعة. صورت الطفل جميل النجار، جسده الصغير ملفوفاً بالكفن، موضوعاً على الطوب كي لا يلمس الأرض. صورت بأم عينيها الموت وهو يزحف إلى أحضان الصغار . في صباح ذلك اليوم، كتبت مريم لأصدقائها أنها ستذهب إلى مستشفى ناصر. زميلها هناك يحتاج إلى مساعدة. كانت تعرف أن الطرق خطرة، وأن القصف لا يرحم. لكنها قالت: “إذا مت، لا تبكوا علي. اجلسوا بجانب جسدي، تحدثوا معي، تشبعوا مني قبل أن أرحل” . كانت تخبئ وصيتها في جيبها. كتبت لابنها غيث ذي الـ13 ربيعاً : “أريدك أن تجعلني فخورة بك. عندما تكبر وتتزوج وتُنجب بنتاً، سمها مريم” . غيث كان بعيداً في الإمارات. سنة ونصف لم تره. حلمها الأخير كان أن تعانقه. في 25 أغسطس، سقطت القذيفة الأولى على محيط المستشفى. سقط زميلها. ركضت مريم لتنقذه، تركض نحو الموت كما ركضت نحو الحياة طوال عمرها. ثم سقطت القذيفة الثانية. سقطت مريم. كانت تقول لأصدقائها قبل أيام: “لا تبكوا علي”. لكننا اليوم نبكي يا مريم. نبكي لأنكِ كنتِ الحقيقة الوحيدة التي لم تكذب . أما وصية مريم لابنها غيث وأظنها ستبقى لنا جميعا: “يا غيث، كن فخوراً بأمك. كن إنساناً. كن حراً.”

2.أميرة العسولي: الطبيبة التي ركضت نحو الرصاص في لحظة خوف، ركضت الدكتورة أميرة حيث يهرب الجميع. كان مستشفى ناصر محاصراً. القناصة الإسرائيليون يسيطرون على كل زاوية. منذ أكثر من عشرين يوماً، أي شخص يتحرك يموت. وفجأة، سقط شاب عند بوابة المستشفى. كان ينزف. الكل كان يختبئ. الكل كان خائفاً. إلا هي. أميرة العسولي، طبيبة النساء والتوليد، خلعت معطفها الشتوي، حنت ظهرها، وركضت. ركضت نحو الرصاص. ركضت نحو الموت. لم تفكر. قالت لاحقاً: “الله نزع الخوف من قلبي عندما شعرت أن هناك شخصاً يحتاجني. لم أفكر في نفسي، فكرت في إنقاذ إنسان” . انتشر الفيديو حول العالم. امرأة عربية، فلسطينية، تركض نحو القناصة لتنقذ شاباً لا تعرفه. وصلت إليه، ساعدته، أدخلته المستشفى. بعد دقائق، سقط طبيب آخر كان يحاول إنقاذ أحد المصابين. رأته أميرة يلفظ الشهادة قبل أن يموت. حملت جسده هي ورفاقها إلى المشرحة . أميرة نفسها نازحة. بيتها في عبسان الجديدة شرق خان يونس قد دُمّر. تقيم في المستشفى. تعمل 24 ساعة. لا تتوقف. تقول: “أن ننقذ الآخرين هو برنامج مدمج في داخلنا. عندما أرى مريضاً يحتاجني، لا أفكر ثانية واحدة في نفسي” . قبل الحرب، كانت أميرة في مصر. كان بإمكانها البقاء. كان بإمكانها أن تعيش في أمان. لكنها أصرت على العودة إلى وطنها. “هناك نساء يلدن في الخيام. هناك أطفال يموتون. مكاني هناك” قالت . في يوم المرأة، نقف أمام الدكتورة أميرة التي لا تزال واقفة. التي تلد أطفال الغد بينما يخيم الموت في كل مكان. وصيتها: “أقسمت أن أنقذ حياة. حتى لو كلفني ذلك حياتي.”

3.بيان أبو سلطان: الناجية التي تحدت الموت بيان نجت. لكنها لا تعرف لماذا. كانت بيان أبو سلطان جالسة في مقهى “الباقة” بغزة. مقهى صغير على الشاطئ، كان ملتقى الصحفيين والفنانين والأطباء. المكان الوحيد الذي يمكن أن تتنفس فيه غزة قليلاً. فجأة في زمن الإبادة، سقطت القذيفة. 24 شهيدا ارتقوا في لحظة . بيان كانت مغطاة بالدماء. صورها وهي نصف غارقة في دمها حية في الوجدان، بعد القصف، كتبت على فيسبوك: “نجونا لنلعن الاحتلال يوماً آخر” . بيان صحفية وناشطة حقوقية. كانت تنشر صور المذابح، تكتب الأسماء، توثق الجرائم. كانت تعرف أنها مستهدفة. لكنها قالت: “البحر كان ملجأنا الوحيد. حتى البحر صار يقصف”. صديقتها الفنانة أمينة سلمي قتلت في نفس القصف. زميلها المصور إسماعيل أبو حطب قتل أيضاً. دفنوه وسترته الصحفية على صدره . وحتى شقيقها الوحيد أعدم أمام عينيها في هذه الإبادة. بيان لا تزال تكتب. لا تزال تصرخ. تقول: “في غزة، نحن لسنا مجرد أرقام. نحن أحلام لم تكتمل. نحن قصائد لم تكتب. نحن أغان لم تغنَّ”. في يوم المرأة، بيان تمثل كل امرأة في غزة نجت بالصدفة. كل امرأة تسأل نفسها كل صباح: “لماذا أنا؟ لماذا متنا ولماذا بقيت؟”. وصيتها: “سأكتب حتى آخر نفس. سأقول الحقيقة. حتى لو قتلوني كما قتلوا الجميع.”

4.ضحى الصيفي: قصة أم نعَت فلذات كبدها الثلاثة وفقدت وجهها الجميل كان صباح عيد الأضحى. اليوم الرابع من أبريل. ضحى الصيفي أرادت أن تسعد أطفالها. بعد أشهر من الجوع والخوف والقصف، قررت أن تأخذهم إلى مكان نزوح أختها في مدرسة دار الأرقم. هناك سيكونون جميعاً معاً. العائلة الكبيرة. الضحكات. الدفء. ريتال، ذات الثلاثة عشر ربيعاً، كانت تساعد أمها في حمل الملابس. نور، العشر سنوات، كانت تعد العيدان الصغيرة التي ستلعب بها مع بنات خالتها. وأسامة… أسامة ذو الأربع سنوات، بعيونه الزرقاء التي تشبه السماء، كان يقفز فرحاً: “ماما، رايحين نلعب؟ رايحين ناكل حلوى؟” ضحى ضمته إلى صدرها. لم تكن تعلم أن هذا آخر حضن. بعد نصف ساعة فقط من وصولهم إلى المدرسة، سقطت القذيفة. لا تذكر ضحى كيف سقطت. لا تذكر كيف اخترق الشظايا جسدها. لا تذكر كيف كُسر فكها وذراعها وتشوه وجهها الجميل. استيقظت بعد ستة أيام في مستشفى بعيد. ستة أيام كاملة كانت بين الحياة والموت، وأولادها يبحثون عنها في السماء. فتحت عينيها. كان الألم يعصر جسدها. سألت الممرضة: “أين أولادي؟” الممرضة نظرت إليها. لم تجب. سألت مرة أخرى: “أين ريتال؟ أين نور؟ أين أسامة؟” ثم عرفت. الثلاثة. ريتال، نور، أسامة. قتلوا جميعاً. أختها أيضاً. أولاد أختها أيضاً. سبعة عشر قتيلاً من عائلتها في لحظة. ضحى لم تبكِ. لم تستطع. كان الجرح أكبر من الدموع. قالت بعدها بأيام: “حمداً لله أنهم لم يعودوا يعانون. لم يعودوا يجوعون. لا تعرفون كم هو قاسٍ أن تروا أولادكم يجوعون ولا تستطيعون فعل شيء”. أما أسامة الصغير… آخر ما تذكرته ضحى قبل أن تغيب عن الوعي كان صوته: “ماما، أنا خايف”. كانت تريد النهوض لتحميه. لم تستطع. انتقلت غي رحلة علاج للأردن، في غرفة بسيطة، تعيش ضحى مع ابنها الوحيد الناجي: سيف. سيف ذو الحادية عشرة، الذي صارت عيناه تحملان حزن الشيوخ. على الطاولة، صور الأطفال الثلاثة. ضحى ترتدي الأسود. سيف يحرس الباب، كأنه يريد أن يحمي أمه من العالم كله. ضحى لا تزال تعمل. لا تزال تكتب. لا تزال تصرخ. تقول: “لن يصمتوا لنا. يجب أن نصرخ نحن. لسنا أرقاماً. نحن أحلام وطموحات. ريتال كانت تحلم أن تصبح طبيبة. نور كانت تحلم أن تصبح معلمة. أسامة… كان يحلم فقط أن يبقى معي”. وفي نهاية كل يوم، تجلس ضحى أمام الصور الثلاثة. تفتح هاتفها. تشاهد فيديوهات ريتال وهي تضحك. فيديوهات نور وهي ترسم. فيديوهات أسامة وهو يركض خلف الكرة. تقول: “سأعود إلى غزة. سأدفنهم بعيوني. لم أر قبورهم بعد. ثم سأعيش من أجل سيف. هذا وعدي لهم”. ضحى الصيفي، أم فقدت ثلاثةً وتربي الرابع. امرأة تحمل في قلبها جرحاً لا يندمل، ولكنها لا تزال تقف. لا تزال تقول: “أنا حية. هم يريدوننا أن نموت، لكننا نولد كل يوم من جديد”. أما وصيتها:”سأعود إلى غزة. سأدفن أولادي في عيوني. ثم سأعيش من أجل سيف. هذا وعد.”

5.تسنيم الهمص: ممرضة اختطفها الموت وعادت لتروي حكايتها في صباح 2 أكتوبر، ارتدت تسنيم معطفها الأبيض كعادتها. كانت في الرابعة والعشرين من عمرها، ممرضة تعمل في مستشفى الكويت ومستشفى أبو يوسف النجار ونقطة طبية في المواصي. كانت تمشي في طريقها إلى العمل حيث الجرحى ينتظرونها، حيث الألم يحتاج إلى يدها . لم تكن تعلم أن هذا صباح سيكون آخر صباح ترى فيه سماء غزة حرة. قبل أن تصل إلى النقطة الطبية في منطقة الأرض الطيبة غرب خان يونس، اعترضتها شاحنة صغيرة. أربعة مسلحين بملابس مدنية قفزوا منها. أمسكوا بها، ضربوها، كمموا فمها، وجروها بالقوة. أطلقوا النار في الهواء لتفريق الناس الذين حاولوا إنقاذها. ثم انطلقت الشاحنة باتجاه الشمال. باتجاه رفح. باتجاه المنطقة التي يسيطر عليها جيش الاحتلال . كانت تسنيم تتلقى قبل اختفائها رسائل تهديد وابتزاز من أرقام مجهولة. لكنها كانت تواصل عملها. كانت تقول لصديقاتها: “إذا اختفيت، لا تنسوني. قولوا للعالم إني كنت هنا” . أما والدها، الدكتور مروان الهمص، مدير المستشفيات الميدانية في غزة، فقد اختطف قبلها بشهرين. بنفس الطريقة. مسلحون بملابس مدنية. في منطقة المواصي. أصابوه في رجله وقتلوا المصور تامر الزعانين الذي كان معه . بدأت رحلة العذاب. نقلوها إلى عدة سجون: عسقلان، مجدو، الدامون، الرملة، هشارون. كانت تتنقل في صندوق حديدي مظلم يكاد يخلو من الأكسجين. شهر كامل لم ترَ فيه النهار. كانت تكتب أسماء إخوتها على الحائط بظفرها لتشعر أنها ما زالت إنسانة . في سجن عسقلان، أخبرها المحققون أن والدها هناك. عندها عرفت لماذا اختطفت. كانت رهينة للضغط على أبيها. سلاح نفسي لتعذيب طبيب أسير بابنته الممرضة . أقسى لحظة في حياتها كانت حين أدخلوها غرفة التحقيق. رأت أباها هناك. الدكتور مروان الهمص، الرجل الذي كان يصمد أمام كل شيء، كان مكبلاً إلى الكرسي. حين رآها، بكى. كان كالجبل لكنه بكى. اندفعت نحوه واحتضنت رقبته. قالت له: “لا تبكِ يا أبي”. قبّل يديه وقدميه. ثم سمعت صوته يقول: “فلسطين فوقنا كلنا” . بعد هذه اللحظة، انهارت تسنيم. فقدت شهيتها. نقص وزنها عشرة كيلو جرامات. تنقلت بين السجون، تعرضت للضرب والإذلال والتفتيش المهين وهي شبه عارية. في سجن الرملة، دفعوها على الدرج فسقطت. عاشت في زنزانة مليئة بالحشرات تحت مراقبة الكاميرات حتى داخل المرحاض . لكن الأسيرات هناك احتضنها. حوّلن السجن إلى مدرسة صمود. تعلمت منهن أن المرأة الفلسطينية لا تنكسر. بعد شهرين، في 27 نوفمبر، أفرج عنها. خرجت بخطوات متثاقلة ووجه شاحب منهكه الجوع. كانت تستند إلى ذراعي شخصين من عائلتها، وبالكاد تتمكن من الوقوف . سألوها عن أبيها. قالت بصوت يختلط بالألم: “لا أعرف شيئاً. فقط أطالب بالإفراج عنه” . وقالت لاحقاً: “فرحت بعودتي، لكن فرحتي لم تكتمل. حضن أبي لم يكن هناك. خرج جسدي وبقي قلبي خلف القضبان. لن تكتمل حريتي إلا يوم يعود أبي إلى البيت” . تسنيم الهمص، الممرضة التي اختطفها الموت وعادت لتروي، ما زالت تنتظر أباها. ما زالت تلبس معطفها الأبيض وتذهب إلى المستشفى كل صباح. لأنها تعلم أن ما يريده الاحتلال هو أن تتوقف. وهي لن تتوقف. وصيتها: “أبي لا يزال هناك. حتى يعود، أنا هنا على خطاه. سأكمل الطريق.”

6.يقين حمد: أصغر مؤثرة في غزة يقين كانت في الـ11 من عمرها. كانت تملك ابتسامة لا تشبه الحرب. يقين حمد، الطفلة التي قررت ألا تخاف. في الـ11 من عمرها، كانت أصغر مؤثرة على وسائل التواصل في غزة. كانت تصور فيديوهات للأطفال النازحين. توزع الألعاب، توزع الملابس، توزع الحلوى. في أحد فيديوهاتها الأخيرة قالت: “رغم الحرب، رغم الإبادة، جئنا هنا لنجلب الفرحة للأطفال” . كانت تعطي دروساً في البقاء: كيف تحمي نفسك من القصف، كيف تختبئ، كيف تجد الماء. كانت تقول لأخيها محمد: “إذا مت، أكمل أنت الطريق. لا تترك الأطفال يبكون وحدهم” . في 23 مايو 2025، قصفت الطائرات منزل العائلة في دير البلح. يقين كانت في الداخل. ساعات تحت الأنقاض حتى وجدوها. كانت صغيرة جداً. كانت باردة جداً . رفاتها الصغير حملوه بين الزهور. زملاؤها في العمل الخيري كتبوا: “استشهدت يقين، وبقي اليقين في قلوبنا أن أطفال غزة هم نبض الإنسانية” . عمها كان مسعفاً في الهلال الأحمر. أخوها كان يعمل في الإغاثة. العائلة كلها تخدم الناس. ويقين كانت تقول: “أريد أن أصبح طبيبة. لأداوي الأطفال مثلي”. في يوم المرأة، نصرخ باسم يقين. لأنها امرأة رغم أن عمرها كان 11 سنة. لأنها أمّنت لأطفال غزة لحظات فرح في جحيم مطلق. وصيتها: “لا تتوقفوا عن إضحاك الأطفال. حتى لو كنا نبكي.”

في الختام ست نساء. ست حكايات. ستة وجوه من نور. مريم التي أوصت ألا يبكوا عليها، أميرة التي ركضت نحو الرصاص، بيان التي لا تزال تكتب رغم الدماء، ضحى التي دفنت أولادها ووعدت بالعودة، تسنيم المختفية في زنازين الاحتلال، ويقين الطفلة التي كانت تضحك الأطفال. في يوم المرأة العالمي، نقول لهن: أنتن لستن أرقاماً في خبر عابر. أنتن لستن مجرد ضحايا. أنتن الحقيقة التي تأبي أن تذوي. أنتن فلسطين. وكل عام وأنتن نور لا ينطفئ. السلام عليكِ يا غزة. السلام على نسائك اللواتي يصنعن الحياة من رحم المو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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