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 작가 편지 “가자를 기억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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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국제 행동의 날’ 서울 집회에서 발언해 주신 김남일 작가님의 발언 전문입니다.

가자를 기억하는 일

내가 가자를 위해, 그리고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문학을 읽는 일입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문학 속에서 팔레스타인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팔레스타인을 영원히 살아있게 만든 그 작가들을 기억합니다.

갓산 카나파니(Ghassan Kanafani),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 파드와 뚜칸(Fadwa Tuqan), 사하르 칼리파(Sahar Khalifah), 무리드 바르구티(Mourid Barghouti), 자카리아 무함마드(Zakaria Mohammad), 아다니아 쉬블리(Adania Shibli), 수전 아불하와(Susan Abulhawa) ……

그리고 내가 아직 읽지 못한 이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자에서 죽은 여러 작가들도 기억해야 합니다.

리파트 알라리어(Refaat Alareer), 가자의 청소년들을 위해 영어교실을 운영했던 그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죽어야 한다면,
당신은 살아주오
내 이야기를 전해야지
나의 물건들을 팔아야지
천 조각을 사야지
끈 몇 개도,
(긴 꼬리를 달아 하얗게 만들지)
가자 어딘가 아이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며
화염 속에 사라진 아빠를 기다리지

그 연, 당신이 만든 나의 연이 날아오르지
그리고 잠시 생각해, 천사가 거기 사랑을 되찾아준다고
내가 만약 죽어야 한다면
그걸로 희망을 가져다주오
그걸로 이야기를 지어주오

إذاكان لا بد أن أموت

إذا كان لا بدّ أن أمو
إذاكان لا بد أن أموت
فعليك أن تحيا
لتقص قصي
لتبيع أشيائي
لتشتري قطعة قماش
و بضعة خيوط
(لتكون بيضاء بذيلطويل)
حزى طفلي في مكانما في غزة
يحدق بالسماء
ينتظر اباه, الذي غادر، على عجل-
بلا أن يوتع أحدا
حزى جسده
حى نفسه –
يرى الطائرة الورقية، طائرتي الي صنعتها،
تحلق عاليا
و يظن لوهلة أن ملاكا عاليا
يعيد الحب
إذا كان لا بد أن أموت
لتجعلها تحضر الأمل
لتجعلها قصة

그는 죽음의 공포 앞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을 바랐습니다.

하늘 높이 연을 날리며 화염 속에 사라진 아빠를 떠올리는 아이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에 기대면, 점령지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의 나크바 이후 모진 고난에 맞서 꿋꿋하게 투쟁하는 가운데 이스라엘로부터, 나아가 주변의 무능력한 아랍국가들로부터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이때 문학이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소설가 수전 아불하와(Susan Abulhawa)는 나크바 때 고향 에인호드를 쫓겨나 예닌에 정착한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듣던 아버지의 시 낭송을 기억합니다.

그때 아랍어 시의 운율은 지중해를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러웠습니다.

사실 그들은 가진 게 별로 없었습니다.

어린 소녀는 운동장도 몰랐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유년기는 시와 새벽의 마술 때문에 참으로 매혹적이었습니다.

소녀는 아버지의 목과 탄탄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안겨 있곤 했는데, 장차 커서도 그것보다 안전하고 아늑한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회상합니다.

소녀는 꿀사과 향기가 나는 담배 냄새와 아부 하얀(Abu Hayyan),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루미(Rumi)의 현란한 말들과 함께 찾아오던 새벽보다 더 황홀하고 부드러운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소설에서 소녀는 2002년 예닌에서 이스라엘 군의 총에 살해당합니다.

실제로도 2002년 4월 예닌에서는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참히 학살당한 바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있던 모든 것을 다 쓸어버렸다고 생각했겠지만, 기억만큼은 어떻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채 난민이 되어버린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기억이야말로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 기억은 곧 그들의 꿈입니다.

앞서 언급한 가자의 시인 리파트 알라리어가 운영한 단체 이름은 <우리는 숫자가 아니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자에서 죽은 이들은 결코 숫자로만 취급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 모두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들었든 아니든, 우리는 그들에게 모두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구도 그들을 가리켜 이스라엘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처럼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라 부를 권리는 없습니다.

아리에 킹 예루살렘 부시장처럼 “그들은 인간도 아니고 심지어 동물도 아니다. 인간 이하의 존재이므로 그에 걸맞게 대해야 한다”고 말할 권리도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들은 결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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