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시인들과 그 작품

자카리아 무함마드

(Zakaria Mohammad 1950-2023)

1월 20일 ‘18차 연대 집회와 행진’에서 작가 오수연 님이 직접 낭독해 주셨습니다. 시간 관계 상 모든 작품을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 전문을 싣습니다.


1950년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에서 태어나 바그다드대학 아랍문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중 귀국 날짜가 이틀 늦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점령군은 국경을 닫아 걸었고, 그는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등을 난민으로 떠돌다가 1993 오슬로 협정에 즈음하여 25년 만에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첫 시집 《마지막 시들》(1981) 이래 《쥐방울 덩굴》(2020)까지 모두 여덟 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고발하는 글을 활발히 발표해왔다.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2020년 ‘마흐무드 다르위시 상’을 수상했다. 상 운영 위원회는 그의 시를 감싸고 있는, 마치 예언자의 시대로부터 오는 듯한 목소리와 어조에 주목하면서 “일상어든 고전 어휘이든 그의 시에서는 대단히 상징적이고 원초적인 느낌으로 변한다. 독자는 마치 아득한 옛날 지구에 첫발자국을 남긴 첫번째 사나이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그의 시는 독특한 존재론적, 실존적 차원을 얻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재갈

소년은 보았다.
검정말
이마에 흰 별 찍힌
검정말은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으면서
한 발을 땅에서 들었다.
이글대는 태양 아래
초원은 짙푸르고
말의 앞갈기 아래
별은 하얗게 타올랐다.
말에게 굴레는 없고
입에 재갈도 물려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말은 씹고
또 씹었다.
머리를 채면서
입술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내리도록.
소년은 놀랐다.
검정말이 뭘 씹고 있는 거지?
혼잣말로 물었다.
뭘 씹지?
검정말은 씹고 있다.
기억의 재갈을
녹슬지 않는 강철로 만들어져
씹고 또 씹어야 할
죽을 때까지
씹어야 할
기억의 재갈을.


연기

우리 집을 지나면서
우리는 계단을 올라가지 않았다.
문을 열지도 않았다.
잠깐 서서
창문으로 나오는 비명소리를 들었다.
초를 구해 왔나?
아니, 우리는 빛도 온기도 구해오지 못했어.
그럴 시간이 없었어.
당신이 짚단을 쌓듯 우리의 시간을 정사각형으로 쌓아놓았고
누군가 손에 성냥을 들고 왔으며
우리의 날들이 타는 연기가 지상과 하늘을 가렸다.


울음

운다는 것은 유전적 결함이다.

예컨대, 버드나무는 천성적으로 울보다.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운다. 아카시아 또한 몸통에서 붉은 수지를 흘린다. 다 쓸데없는 짓이다. 눈물은 참아야만 하는 법이다.

돌은, 이를테면, 온전한 유전자를 갖고 있어서 울지 않는다. 그것의 유전자는 어떤 결락도 없이 완벽하게 늘어서 있다. 총 또한 울지 않는다. 총은 유감스러워할 과거가 없다. 생각하면 눈물이 날 그 누구도 없다.

나로 말하자면, 울보를 미워하는 누군가와 친했던 적이 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사람들에게 그는 호통 쳤다: “눈구멍을 닫아, 개자식아, 닫으라구.” 그리고 그들에게 총을 쏘았다.

눈물 한 방울 없이 그는 가버렸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는 제 발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오줌발처럼 정신을 흙바닥에 내갈겼다.

울음은 잘못된 것이다. 운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실책이다.


이주

그들은 모두 갔다.
북쪽으로
가슴까지 차도록
풀이 무성한 땅으로.
옷가지에서 뜯긴 천조가리들
천막 줄 묶었던 말뚝들
뒤에 남기고.
그들은 모두 갔다.
어린애들을 나귀에 태워서
사내 녀석들에게 짐 바구니를 들려
양떼의 방울 소리 울리고
구름 한 점 하늘을 타오르는데
그들이 가면 갈수록
길어져
천막으로 되돌아오는 그림자.
묵묵히 앞장서다
개들은 구부려
바라보았다.
거꾸로 흐르는 어둠의 강을.


출처: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집, 오수연 옮김, 도서출판 강, 2020

번역 오수연
자카리아 무함마드 시인의 시 영문 번역을 중역하였고, 아랍어 원문과 대조하여 감수를 받았습니다. 이 시인의 시가 추상적이라 번역이 불가한 영역이 있어, 영문 번역부터 아랍어 원문과 다르고, 우리말 번역도 시인과 상의하여 영문 번역과도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즉, 우리말 번역문이 아랍어 원문과 다를 수 있습니다.